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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색멍멍이 1 1286
학교의 공무원 시험 준비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곳에서는 출석체크를 하는데, 평일 낮에는 조교님이 출석체크를 해서 공정하지만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출석체크를 자율에 맡깁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거의 90퍼센트의 사람들이 한 번 이상 나오지 않았는데도 나와서 공부했다고 비양심적으로 출석체크를 하였습니다. 출석률이 낮으면 퇴출되어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까봐 거짓으로 출석체크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양심적으로 하였기에 평소에도 이에 대한 분노가 컸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출석률 통계가 공개되었는데 저는 거의 최하위에 속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안 한 것도 있지만 최하위를 가리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비양심적으로 체크한 사람들 때문에 제가 최하위로 분류되었다는 것이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저도 이곳 환경이 정말 절실한 상황이지만, 퇴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양심을 지키려해왔는데, 그 결과가 이건가 하는 생각에 허무했습니다. 그렇다고 저 또한 그들과 같이 허위출석체크를 하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께 이 통계는 퇴출의 근거로 활용할 수 없는 신뢰도가 매우 낮은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율출석체크를 없애고 조교님이 있는 시간에만 출석체크를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함께 양심적으로 하고 있는 다른 친구에게 상담했더니, 이 일이 교수님 귀에 들어가서 뭔가 조치가 취해지면, 양심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몇 안되기 때문에 교수님께 이 일을 전한 사람이 저라는 게 금방 추론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통해 이곳의 총책임자인 다른 교수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면 그 교수님은 개개인을 색출하려 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비양심적으로 출석체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석률이 꼭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친구는 출석률이 낮아 퇴출되면 그냥 다른 곳에서 공부하면 된다고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저는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냥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상치못한 결과가 초래될까 두렵기도 하여 교수님께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제 마음은 너무도 불편했습니다. 일단 비양심적인 이곳 사람들에 대한 화도 너무 많이 나고, 공정하지 못한 찜찜한 무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말하고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도 화가 나고, 그로 인해 제가 피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화가 많이 납니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상담도 못하겠습니다. 제 마음은 교수님께 너무나도 말하고 싶은데, 교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실지 알 수 없어 함부로 말도 못하겠고, 그냥 이 큰 문제를 덮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너무 화가 납니다. 이제는 이러한 일을 그냥 모른 척 넘어간다는 것이 제가 저의 양심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일이 많을걸 생각하면, 그래서 또 제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저 자신의 도덕성이 훼손되는 느낌일 것 같아서 더 괴롭습니다. 제 결정이 과연 옳은걸까요? 교수님께 말하자니 결과가 걱정되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자니 불의에 눈감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저만 혼자 마음에 걸릴 일 안 하고 살면 그걸로 충분한걸까요? 이 일을 이 상황과 상관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해보았더니 주변 사람들은 대개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 너도 그 사람들처럼 해라, 라는 반응이나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으니 잊고 너만 잘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말하고, 별로 저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자니 제가 이상한건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제가 한심하고 이상한건가요? 저의 삶의 방식은 틀린걸까요. 제가 멍청하게 살고 있는걸까요. 한편으론 왜 다들 이렇게 불의에 무감각한지 왜 저처럼 화내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회사의 비리를 용기 있게 내부고발한 사람이나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해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은 그러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하고, 또 도덕을 지키는 사람들이 불공정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한 사회라야 현재 불공정과 부도덕 때문에 치러지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회사의 비리를 고발해봤자 그 사람을 고용하려는 회사는 아무데도 없다고,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냐고 합니다. 그들은 일을 구하지 못해 비참하게 살거라고 합니다. 현재 제가 처한 이 상황도 저는 조그마한 악이 모여 커다란 악을 만드는 것 같고, 또한 모든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게 이익으로 보여도 이것을 방치하면 결국 피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러한 일들을 악이라고 규정하는 게 독선과 아집일까요. 제가 생각이 너무 어리고 짧아서 다른 이들처럼 어른스럽게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걸까요.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자신이 멍청하고 한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스러우면서도 다른 이들이 왜 화내지 않나 이해가 안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와 주변 사람들의 가치관이 다른 것 같아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