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직장의 망령

Advice
상담실

첫직장의 망령

Control freak 1 1697
저는 첫 직장을 해외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부 프로그램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일을 하는데 열명 남짓한 회사에서 한국인이라고는 부사장님과 저 둘 뿐인 회사에서 둥지를 틀게 됐지요.
 

글쎄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받아준 걸 감사해야 하는 건 알지만.

너무도 강압적이고 저를 쥐고 흔들려 했던 상사덕분에 뭐랄까.. 겁먹는 버릇이 생긴거 같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야말로 생 초짜였습니다. 그쪽에서도 인턴으로 받아들였던 거고 처음 면접에서 사장님은 함께 성장하자고 까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 부사장님이었습니다.

 저를 참 많이 아껴주셨습니다. 식료품도 같이 사러 가주시고 부사장님댁 애기 데리고 수영장에 가라고도 해주시고 오후가 되면 제가 일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이랑 놀아주라고도 하셨구요.

 거기까진 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난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매번 사내에 설치된 카메라로 다 보고 있다. 개인 이메일 다 검열되니 하지마라( 저도 기본적인 직장 예절은 잘 알고있고 이전에 개인 용무를 업무시간에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원들과도 \"쟤네들이 너에게 잘 대해주는 것 같지만 너랑 한 얘기 다 나한테 와서 하니 왠만하면 친하게 지내지 마라 \" - 정말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타지에 와서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부담스러웠지만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계속 되니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장님은 저에게 보험에 관한 교육을 시켜주시느라 강의나 외부인 초청 강연에 같이 들으라고 불러주시는데. 부사장님은 저를 빼내어 보험 전화를 돌리라고 하고.

 

  항상 저를 떠보며 직원들의 동향을 알려고 하고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캐물으려 하셨습니다.

  한번은 다른 직원의 행동거지 때문에 사측과 직원들 간에 불화가 생겼고 어른스럽게 해결할 거라는 제 예상과 달리 부사장님은 '너가 직원들이 무슨 말을 서로 하고있는지 말하는게 회사의 신임을 얻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도 너를 믿을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 행동거지는 직장예절 문제였고 글쎄요.. 제가 보기엔 회사에 크게 해를 가할 일 같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 직원이 무언가를 훔치거나 회사의 기밀을 빼돌리는 거였다면 당연히 묻기도 전에 보고를 했겠지요. 하지만 노사간의 조정문제라 생각하고 저는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본심은 정말 착하신 분이었지만 이런식으로 계속 내보이고 싶지 않은 제 속을 파헤치려고 하시니 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공유하고 싶은 얘기의 기준이 있는건데 어디부터 말하고 어디부터 차단해야하는지 경계가 모호해 지면서 거의 모든 일을 함구하게 되었습니다.

 

 타국에서 비자문제로 위협을 받는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입국했기에 문제 될 것도 없었는데 저의 무지함를 이용하시더군요.. 한국에 있는 많은 3D노동자의 현실을 알게 되었죠)

 

 결론적으로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한참동안 그 아무도 믿지 못하고 일에만 매달렸고 귀국하고 나서는 글쎄요..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생겨버렸습니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에서는 일해도 내가 발전 할 수가 없다.. 라는

 

 처음 인터뷰에서 업종이 저와 맞지 않았기에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오퍼를 거절하면 귀국해야 했기에 일하게 되었고 일하던 내내 부사장님이 말씀하셨듯 사측에서도 제가 아니라 딴 후보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답니다. 정말 일하는 내내.. 그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제가 첫번째는 아니었다고.

 

 처음에 힘든 회사에 입사했기에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인턴이라는 명목이 꼭 인력 양성이 아니라 비용 절감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젠.. 더이상 이용당하지 말아야지 하는 터무니 없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내가 세운 커리어 Path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나의 커리어와 맞지 않다면 차라리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

 

 그래서 그동안 들어온 오퍼도 꽤 거절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그러면 안되는 거겠지요.

 

 저처럼 이런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저는 ... 아직도 그 망령에 시달리는 듯 합니다..